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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광주의 아픔과 함께한 해직 언론인의 아픔
광주항쟁 전국화’ 막기 위한 언론학살
 
조남재 기자 기사입력  2020/05/20 [23:03] ⓒ IBN일등방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조남재 보도1국장    

 [일등방송=조남재 기자]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지 벌써 40년 세월이 훌쩍 흘러갔다. 신문사 한 구석에서 광주 현지에서 들려온 참혹한 희생자 사진들과 끔찍한 소식에 몸서리치던 기억, 외신 기자들을 통해 전해진 참담한 소식들은 기자들 사이에서조차 속 시원하게 공유하지 못했고 소곤소곤 전하며 숨죽여 귀동냥을 해야 했던 암울한 시절이었다.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조치로 언론은 검열에 묶여 광주소식을 일절 보도하지 못했다.

 

신문사와 방송사 앞에는 중무장한 장갑차와 무장군인들이 배치돼 노골적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막은 것이다.

 

기자들은 물론 언론사 직원 모두는 공포감에 짓눌릴 수밖에 없었던 80년 5월의 기억이다.

 

당시 기자협회는 5월 20일 자정부터 계엄사의 언론검열을 거부하기로 결의하였고 검열거부 관철에 전력하다 여의치 않으면 제작거부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양심적인 기자들이 앞장서 각 사별로 검열·제작거부를 결의하고 실천했으나 신문은 언론사주의 명을 받은 간부급들이 나서 억지 지면을 메꾸었다.

 

신군부는 일차 목표는 광주시민 봉기를 유혈로 조기 진압하고, 광주항쟁 소식이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않도록 원천 차단하기 위한 무자비한 언론통제가 가해졌다.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후 권력을 틀어쥔 신군부 세력은 제작거부운동에 앞장선 기자들을 언론계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소탕작업’에 들어갔다.

 

보안사, 정보부, 경찰 등의 사찰보고를 바탕으로 ‘문제기자’들을 추려내 각 사에 명단을 통보했다. 언론사는 명단에 있는 기자들을 무더기로 해고했다.

 

전국적으로 9백여 명이 강제해직됐다. 해직 사유로는 ‘국시부정’ ‘반정부활동’ ‘검열거부’ 혐의 굴레를 씌워 철저히 짓밟았다.

 

한국기자협회가 2006년에 1980년 언론검열 거부 개시일인 5월 20일을 ‘기자의 날’로 선포하며 매년 그 뜻을 기리기로 한 것이다.

 

광주항쟁 40주년이 됐지만 아직까지 계엄군에 발포명령을 내린 자가 누구인지, 계엄군이 시민군을 향해 헬기 사격을 가했는지 진상규명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오늘까지도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고 광주정신을 폄훼하는 극우세력의 망언과 모욕이 그치지 않는 것도 진상규명 작업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80년 언론민주화투쟁은 광주항쟁과 뿌리를 같이 하는 동일사안이다.

 

강제해직을 광주에서 억울하게 숨지고 부상당한 사람들의 희생에 비견할 바는 못 되지만, 삶의 터전인 언론사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고통에 대한 국가차원의 명예회복과 언론개혁 차원에서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전두환 신군부세력의 쿠데타에 대한 조직적 항거는 광주에서의 민중항쟁을 제외하고는 언론인 투쟁이 거의 유일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8일 ‘40주년 5·18기념사’에서 “국가폭력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경찰관, 군인, 해직기자 같은 다양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새로 출범하는 21대 국회는 해직언론인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구제조치를 반드시 법제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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