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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강신석 목사님과 5월 이야기
 
이지현 기사입력  2021/02/08 [06:01] ⓒ IBN일등방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이지현 5.18부상자동지회초대회장 (시인/연극인 )   

【iBN일등방송】   고인이 되신 조아라 회장님과 강신석 목사님의 배려로 마련한 북구 유동 YWCA 601호 5ㆍ18민중혁명 부상자 동지회 사무실로 전화 한 통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56국의 5525번이지라"

"네 맞습니다.뭔 일이다요?"

 

"거기 부상자동지회 사무실이 맞소?"

"네 맞아라.부상자 신고헐라고 그라요?"

 

"신고는 신곤디 억울해서 그라요"

"천천히 얘기해 보이시오"

 

"우리 동생이 80년 5월 19일 조대공전을 댕기다가 공수부대의 곤봉에 맞아 정신이 이상해갖고 8년 반 동안 정신병원을 전전했단 말이오"

"예 참 안 됐구만이라.그래갖고라"

 

"그랑께 3월 25일부터 목포 애중원에서 요양중이었는데 11월 7일에 죽었다고 연락이 왔단 말이오"

"아니 그러면 죽었단 말이요?"

"네"

"오메 어째야쓰께라 잉"

 

"장례를 치를려다가 분통이 터져서 연락했소"

"그러면 지금 어디에 계시오?"

 

"목포에 있어요"

"네 알았소.목포로 갈께라"

 

사무실에서 봉사하고 있던 김태헌과 김광호 씨를 목포로 급파했다.

사망 소식을 듣고 보성 벌교에서 부모님과 큰 형님과 성남에서 여동생이 도착해 있었다. 부검은 목포의료원에서 실시됐다.

 

사인은 복막염, 그런데 이미 장기가 썪어 있었다. 사망한지 며칠동안 은폐했다가 뒤늦게 사실을 알린, 구타에 의한 사망 의혹이 농후해 보였다. 눈물을 흘릴 틈도 없었다.  사인규명 투쟁을 위해 전대병원으로 급히 옮겼다.

 

80년대 염라대왕도 무서워한 조직이 있었다. 바로 5ㆍ18유족과 오부동 오청동이었다. 어찌 좌시할 수 있으랴.

 

재빠르게 동원령을 내리고 1988년 11월 8부터 '김형영 열사 사인규명 투쟁'을 전개했다. 

 

다음 날 버스를 대절하여 목포 애중원으로 갔다. 그런데 원장은 숨어버리고 없었다 그래서 목포시청으로 갔다. 구사대 같은 사람들이 막았다. 밀고 당기기를 했다. 그 당시 시민 자발 투쟁위(시자투,회장 고순석)라는 자생단체가 있었다. 그들은 항상 전위대 역할을 했는데 장태근 박주석 등은 싸움의 귀재였다. 그들이 나서자 분위기가 바꿨다. 그 순간 전대병원 영안실 앞에서 5ㆍ18 낙지점의 셧다맨을 하며 술로 인생을 달래고 사는 이춘기 동지(고인)가 어디에서 소화기를 갖고 왔다. 우리는 사용법을 모른데 소화기를 작동했다. 폭포수처럼 하얀 액체가 분사되었다. 공무원들은 질겁을 하며 도망쳤고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간단히 끝날 판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홍보물을 만들어서 억울함을 알리고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그러나 수차례 애중원으로 연락을 해도 콧방귀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정당 최영철의 목포지구당 사무국장인 이원석 씨가 이사장이었으며 권력의 보호 아래 있었던 것.

 

항의가 거세지자 할 수 없이 동생 이양국을 원장직에서 사임케 하며 마무리지으려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함운경 동지 등이 서울의 미문화원을 점거하듯, 5월항쟁 지도부가 있었던 전남도청을 급습했다. 그리고 전남 부지사실 점거농성을 하고 도지사와 면담을 요청했다.

 

꽤 시간이 흐른 후에 만났다.

 

"요구사항이 뭡니까?"

"첫째,애중원에 대한 행정감사를 실시하시오"

 

"알았소. 두번 째도 있소?"

"김형영 동지의 사인규명을 밝혀주시오"

 

"그것은 수사기관과 함께 협조토록 하겠소"

"세번 째는 5월가족에 대한 인권 보장이요"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 네번 째는 가족들에 대한 물적 정신적 보상입니다"

 

서울 올림픽이 있었던 88년, 우리는 목포를 수차례 오가며 20 여 일을 2년의 세월처럼 눈물과 땀과 열정과 동지애와 사명감으로 보냈다. 협상은 마무리됐다. 그래서 장례위원회(위원장 강신석 목사)를 꾸렸다.

 

마침내 12월 4일 전남대병원에서 발인제를 시작하여, 전남도청 앞 5ㆍ18 광장에서 3000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 '5월투사 고 김형영 동지 민주도민장'으로 치뤘다. 당시 사회는 이지현, 경과보고 김태헌, 조사는 전계량 유족회장, 배종열 광주.전남 민중운동 협의회장, 최완욱 전남지역 대표자 협의회 회장이 맡았다.

 

추모식을 마치고 윤기곤 씨가 그린 대형 영정과 태극기를 앞세웠다.  그 뒤를 70여 장의 만장을 들고 금남로를 거쳐 공용터미널 광장에서 '노태우 정권 규탄대회'를 하고, 계림동 시청 앞과 서방 사거리까지 장례행렬을 한 후,  5ㆍ18 묘역에 안장했다.

 

벌써 23년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은 23년 전 김형영 동지의 장례위원장을 맡은 강신석 목사님과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할 날이다.

 

강신석 목사님은 80년 이후 민주화와 통일, 전교조와 비전향 장기수와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헌신했다. 특히 5ㆍ18부상자회 창립과 5ㆍ18 특별법 쟁취를 위해 열정을 쏟은 5월의 산증인이고 스승이며 빛고을의 큰 어르신었다. 그래서 더욱 비통하다

 

총칼로 학살한 전두환은 버젓이 살아있는데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바친 어르신들은 한분 한분 하늘 여행을 떠나고 있다.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  아니 슬픔을 넘어 분통이 터진다.

 

김형영 동지도 강신석 목사님도 소천했다. 김형영 동지의 죽음이 인연이 되어 김 동지의 여동생은 5ㆍ18유공자와 가정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고있다. 그런데 공법단체 설립이라는 요물때문에 김아무개 여사님도, 5월가족도, 광주시민들도 참말로 복창이 터진다.

 

입맛도 없고 잠을 이룰 수 없다. 80년도 5월엔 공수부대의 만행에 대동단결 결사항쟁으로 맞섰던 자랑스러운 동지들 아닌가? 그런데 2021년엔 주먹밥 공동체 5월을 망각한 일부 지도자들과 부화뇌동자때문에 홍역을 치루고 있다. 코로나 백신은 개발됐건만 '5월의 망령'은 묘지에 뭍혀야 사라질지....

 

이름없이 쓰러져간 무명열사,아니 암매장당한 수많은 원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곧 설립될 공법단체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한과 국민들의 투혼이 버무러져 만들어진 아름다운 결정체다. 국민들이 5월가족에게 바치는 소중한 선물임을 명심하고,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드린 말씀이다. 뼈따귀 놓고 으르렁대는 개처럼 살지말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소처럼 살아가자고...

 

금년은 소띠 해 아닌가? 신축년,그래서 5월을 신축하여 희망가를 불러야 한다./글쓴이 = 이지현(5ㆍ18부상자동지회초대회장, 시인, 연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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