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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인생길 연 법조인 박연재 변호사
‘국가관 불량’ 사법고시 탈락 후 2007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권고 통해 변호사 길 열려
 
오현정 기자 기사입력  2019/12/02 [21:41] ⓒ IBN일등방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007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이하 진실, 화해 정리위)의 권고로 이듬해 사시 3차 면접시험에 합격, 환갑의 나이에 변호사로 법조계에 입문한 박연재 변호사     © 오현정 기자

【iBN일등방송=오현정 기자】영암이 고향인 박연재 변호사는 1970년 전남대 법대를 수석 입학해 1981년 제23회 사법고시 2차까지 합격했으나 이듬해 국가관 불량이란 사유로 3차 면접에서 탈락했다.

 

당시 민주화운동이 한창인 대학시절 시위에 가담해 학사처분 경력이 국가관 불량이라는 전력이 되어 그의 법조계 진출을 가로 막은 것.

 

이후 박 변호사는 생계를 위해 한국방송공사(KBS) 방송기자에 합격해 29년을 현장을 누비며 정론직필 언론의 사명을 실천하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특히 방송기자의 눈으로 광주민주화운동, 전교조, 초기의 재야단체에 대한 보도를 기자의 직분으로 부끄럼 없이 수행했다.

 

그는 2007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이하 진실, 화해 정리위)의 권고로 이듬해 사시 3차 면접시험에 합격, 환갑의 나이에 변호사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박 변호사는 법조인으로서 2014년 이미 진실, 화해 정리위 마저 진상규명 불능결정을 내린 한국전쟁 당시 영암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을 법원이 63년 만에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또한 2016년 나주, 화순 민간인 희생사건도 승소해 지금도 법조계에서 회자되어지는 사건들이다.

 

박 변호사는 집안도 법조인들로 구성되었다.

 

2012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그에게는 사법연수원 2기 선배인 딸(현직 검사)과 사위(변호사)에 이어 4기 후배인 며느리까지 법조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박 변호사는 저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특히 제대로 된 재판을 받기 어려운 소외된 이웃을 위해 변호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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