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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명 다할 때까지 캄보디아에 사랑 전파”
시엠립 한인회장 고 윤윤대씨, 14년간 말기암 딛고 현지 취약계층 돕기 앞장
 
오현정 기자 기사입력  2020/07/01 [00:22] ⓒ IBN일등방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화순전남대병원 입원 당시의 윤윤대씨(맨왼쪽). 캄보디아 국가대표 양궁 코치(맨오른쪽) 등이 방문해 윤씨의 쾌유를 기원했다.  © 화순전대병원 제공

 

【iBN일등방송=오현정 기자】아프리카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고 이태석 신부처럼, 캄보디아의 취약계층을 위해 14년간 봉사활동을 펼치다 암으로 최근 화순전남대병원에서 숨을 거둔 이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전 캄보디아 시엠립 한인회장인 고 윤윤대(54). 윤씨는 서울 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충북 충주시에서 개인사업하며 국제로타리3740지구 회장을 맡아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에 앞장섰다.

 

효자였던 윤씨는 홀어머니의 갑작스런 타계로 방황하다, 지난 2006년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중 가난한 캄보디아의 참상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더욱이 캄보디아가 19506.25 당시 최빈국이던 한국에 쌀을 원조해준 국가였다는 점에 더욱 놀랐다. 윤씨는 국내 사업을 정리하고, 지난 2007년 앙코르와트 유적지인 시엠립에 정착했다.

▲ 캄보디아 봉사활동 당시 윤윤대씨(오른쪽)가 낙후지역을 방문해, 현지 주민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 화순전대병원 제공

 

이후 윤씨는 현지 고아원들을 방문해 빈곤계층의 어린이들과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 에이즈 투병중인 아동들을 위해 청소·빨래·목욕 등 봉사활동을 펼쳤다. 고아원 봉사활동을 마치고는 현지민 주거지에 텐트를 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캄보디아어를 배우고, 그들에게는 한국어를 가르쳐주면서 형제와 다름없이 지냈다.

 

당시만해도 유명무실했던 시엠립 한인회재건에도 힘을 쏟았다. 윤씨의 열정에 힘입어 시엠립 한인회1천여명에 달하는 시엠립 거주 한국인들의 구심체로 거듭났다. 아내인 류시명(51)씨도 지난 2010년 한국에서 시엠립으로 이주, 현지에서 발 마사지숍을 운영하며 윤씨의 봉사활동을 적극 도왔다.

 

윤씨는 한인회를 이끌며, 형편이 어려운 현지민들의 집수리, 먹거리와 의류 지원, 학생들에게 중요한 교통수단인 자전거 지원 등에 앞장섰다. 한국의 많은 개인·단체들과의 소통 협력을 통해, 캄보디아에 대한 지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윤씨의 주선으로 경북의사회·열린의사회·충북의사회 등의 의료봉사, 충북 옥천군 자원봉사센터의 자원봉사, 앙코르대학 한글어학과에 도서 기증 등이 이뤄졌다.

 

봉사활동에 전념하던 윤씨에게 병마가 찾아왔다. 지난 201810월 광주에서 결혼할 캄보디아 여성의 부모 역할차 잠시 입국, 혈변증세를 보이자 검진받은 결과 대장암 말기판정을 받았다. 종양은 간으로까지 퍼진 상태였다.

 

그는 지인의 권유로 화순전남대병원에 입원, 수개월간 항암치료에 이어 대장암·간암 수술까지 받았다. 아내인 류씨는 시엠립의 발 마사지숍을 처분하고, 윤씨의 병간호에 매달렸다. 암투병중에도 그는 봉사활동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수술받은 후 장루주머니를 찬 채로 시엠립으로 돌아가 국내 의료진의 현지 봉사활동을 지원하기까지 했다.

 

잠시 호전되는 듯했던 병세는 다시 악화됐다. 캄보디아 입·출국을 반복하며 드문드문 암치료를 받긴 했지만, 그 사이 암이 재발해 폐와 엉덩이뼈 부위로까지 퍼졌다.

 

지난해 10월 그는 마지막 캄보디아행을 결심했다. “여생을 암치료를 받는 데 쏟느니, 생명이 다할 때까지 시엠립에서 해왔던 봉사활동을 계속하겠다는 그의 신념을 아무도 막지 못했다.

 

올해 5, 윤씨는 호흡하기 힘들고 걷기조차 힘겨운 상황이 됐다. 서둘러 귀국했지만 코로나19 감염 차단을 위해 자가격리와 음압병실 입원을 거친 후, 최근 화순전남대병원 응급실에서 숨을 거뒀다.

 

주변의 오열 속에 그는 아내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도 유언을 남겼다. “캄보디아의 고아들과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을 잘 돌봐달라.

 

윤씨의 부음을 들은 시엠립 교민들과 그의 도움을 받은 많은 캄보디아 사람들은 슬픔에 빠졌다. 그에게 한글을 배운 현지 학생들의 애도의 글이 윤씨의 영면길을 배웅했다.

 

광주의 영락공원 빈소에 남겨진 사진 속 캄보디아의 한인천사는 여전히 따뜻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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